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요하라 가즈히로 (문단 편집) == 플레이 스타일 == 통산 성적은 다음과 같다. 통산 2,338경기 출장, 타율 .272, 출루율 .389, 장타율 .520 OPS .909, 2,122안타, 1530타점, 525홈런(역대 5위), 1955삼진(역대 2위[* 1위는 [[나카무라 다케야]]]), 1346볼넷, 몸에 맞는 볼 196개('''역대 1위''') 통산 성적을 보면 당연히 수많은 타이틀을 차지했을 것 같지만, 실제로는 타격, 홈런, 타점 1위를 단 한 번도 획득해 본 적이 없는 속칭 '''[[무관의 제왕]]'''이다.[*홈런 기록 시즌 최고 홈런이 1992년의 37홈런인데 이해 리그 홈런왕은 팀 동료인 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(41홈런)였으며 1995년 [[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|다이에 호크스]]의 [[고쿠보 히로키]]가 28홈런으로 홈런왕을 차지했을 때에는 25홈런밖에 못쳤고(...) 1996년에는 31홈런을 쳤는데 당시 [[오릭스 버팔로즈|오릭스 블루웨이브]] 소속이었던 [[트로이 닐]](2001년 [[두산 베어스]]에서도 뛰었으나 두산에서는 17경기 .193 1홈런 3타점만 기록하고 폭행사건에 휘말려 퇴출)이 32홈런을 쳐서 '''딱 1개차'''로 밀렸다...][*타점기록 상술했듯 시즌 최고 타점이자 유일한 100타점 이상 기록은 요미우리 시절이었던 2001년의 121타점, 하지만 그 해엔 [[야쿠르트 스왈로즈]]의 [[로베르토 페타지니]](127타점)에게 밀려 타점 2위에 그쳤다. 세이부 시절 최고 타점인 96타점을 기록한 1992년엔 [[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]]의 [[부머 웰즈]]에게 '''딱 1점차'''로 밀려서 타점왕을 놓쳤고, [[스즈키 이치로]]를 포함, 무려 3명의 공동 타점왕(그것도 고작 80타점)이 나온 1995년엔 타율 .245 25홈런 64타점으로 다소 부진했던 바람에..] 게다가 우승 10회, 일본시리즈 우승 8회 등 여러 번 우승을 경험했음에도 시즌 MVP는 커녕, 일본시리즈 MVP도 수상한 적이 없다. 다만 신인왕, 최고출루율, 최다승리타점, 일본시리즈 우수선수상(3회), 일본시리즈 감투상(2회), 골든글러브(5회) 등은 수상했었다.[* 그 외에도 올스타전 MVP 통산 7회 수상으로 일본프로야구 1위 기록이다. 다만 일본프로야구는 올스타전을 시즌당 1경기만 하는게 아니라 2, 3경기를 한다. 한국 [[KBO 리그]]도 80년대에는 그랬던 적이 있긴 하다.] 그래도 홈런만큼은 꾸준히 기록한 덕택에 25+홈런 시즌을 13번 기록했고, 부진을 거듭했던 요미우리 시절 통산 500홈런도 힘들지 않을까 평가했지만 결국 500홈런을 돌파, NPB 통산 홈런 5위에 올라있다.[* NPB 통산 홈런 1~4위는 [[오 사다하루]], [[노무라 카츠야]], [[카도타 히로미츠]], [[야마모토 코지]].] 통산 삼진 2위, [[몸에 맞는 공]] 1위라는 아이러니한 기록이 있다. 통산 삼진 2위야 당연히 그의 호쾌한 타격 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됐다고 할 수 있는데, 시즌 삼진 1위를 무려 세 번(1986, 1997[* 특히 이 시즌에 [[선동열]]과의 맞대결은 전부 삼진으로 끝났다. 그 때문에 요미우리는 9월 초까지 꼴찌에서 맴돌았다.], 2001)이나 했고, 시즌 100삼진 이상도 9번 기록했다. 이런 삼진 생산능력(?)에도 불구, 무시무시한 타격을 보여줬던 이유는 세이부 시절 감독이었던 [[모리 마사아키]]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. 장타력을 통한 위압감과 괜찮은 선구안~~그리고 [[몸에 맞는 공]]~~이 있어서 타율을 1할 이상 상회하는 출루율을 기록하고, 일단 맞춘 공은 확실히 강하게 때려낼 수 있었던 [[OPS 히터]]로, 역대 최고의 파워히터가 될 것이다라는 고교 시절의 설레발에 미치지는 못했어도 일본프로야구에서 역대로도 손꼽히는 강타자로 상당한 누적 기록을 쌓았다. 몸에 맞는 볼이 많은 점에 대해, 그의 타격 스승이었던 [[도이 마사히로]][* 도이 마사히로도 기요하라처럼 고졸 신인 1년차 때부터 4번 타자로 뛰었고 현역 시절 통산 465개의 홈런과 2,452개의 안타를 기록한 강타자다.]는 코치 자신이 도박 혐의로 입건되는 바람에 루키 시절 기요하라에게 피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 탓이라고 자책한 척이 있다. 도이는 코치 복귀 후 [[마쓰이 가즈오]] 등에겐 이를 철저히 가르쳤다고 한다. 그래도 전설의 강타자 중의 하나였던 도이였던지라 그래도 "루키 시절의 기요하라에게는 1군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부터 가르쳤다"라고 술회했을 정도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